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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뉴스레터에는 어느 자매님에게 쓴 편지를 동봉합니다. 지금의 기성교회의 형편을 살펴 본듯하여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 해 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10 11월 뉴스레터

ALM Ministry

6694 Palo Verde Place

Rancho Cucamonga, CA 91739

www.alittlemaid.org

phone:903-803-0491

 

Dear Mrs. S

 

   집에 돌아와서 주신 주간지(깊은 샘, vol. 118)를 단숨에 읽어보고 편지를 씁니다.

   "깊은 샘" "세계복음화전도협회"(다락방 전도운동)의 주간지 임도 알고, 유명한 류광수 목사님의 천로역정(天路歷程)을 인터넷에서 읽어 보기도 했습니다. Mrs. S께서 다니는 "주님이 함께 하는 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전도활동에 대한 훈련을 받았을 것이며, 박성수 목사님은 다락방 전도협회에서 특수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다른 교단의 목회자들 보다 더 많은 대학과 신학의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는 짐작을 합니다.

말하자면 다락방 전도운동을 하고 있는 교단의 자부심도 대단하고, 교인들의 열성은 여호와의 증인들 못지 않게 활발함을 배웠습니다.

 

   교계에서 이단의 낙인을 받아 가면서도 교세는 확장되고, 세계 각국에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고 있는 다락방 운동은 많은 분들의 칭찬도 받고 있습니다.

   저는 다락방 운동의 특수하고 활발한 사역에 대하여 감명을 받는 다기보다는, 말세에 교회활동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 다락방운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통 교단이 공식 발표한 이단 및 단체 목록"에 의하면 93개의 교회 및 기독교단체가 이단으로 지적되었습니다. 그 중에 다락방 전도운동이 들어 있고, 이단이 된 이유 등을, 마귀론, 구원론, 교회론, 신학적 문제 등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통교단이 가르치는 교리 이상의  것을 가르치면 이단으로 규명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이단은 거짓 선지자를 지적하며,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역자들은 다 하나님께서 이단으로 규명하십니다.

 

   예를 들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에 영접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모든 정통교단이 믿는 교리이며, 또 다락방전도회가 믿고 강조하는 선교구호가 아니겠습니까? 만일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에 영접하는 것으로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정통교단과 다락방 전도회가 이단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998 8 27일에 개최되었던 "다락방 류광수 목사공청회 일문일답"에서도 위에서 지적한 "예수 영접"에 대하여 질의 문답이 있었고, 우리가 꼭 예수님을 영접해야지만 구원을 얻는다고 철저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 "영접이 바로 믿음"임을 제시했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현상은 말세에 와서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현상입니다. 믿는 자들이 신앙의 권위를 교회의 교리와 전통에 두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는 두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와 교단이 서로 "너는 이단이고", "너도 이단이다"라고 비난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말씀 안에 있는지를 살펴볼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지 못한다"라고 하셨겠습니까? 성경에 권위를 두지 못한 교회와 교단들이 다 장님임을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 사실의 증명이 한글 성경입니다. 우리의 신앙기준이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또한 유일한 말씀인 성경이라고 믿는다면 100년이 훨씬 넘는 한국기독교가 성경이 바로 번역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선교활동 이전에 성경에 대한 관심을 여러모로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예수 영접 교리"와 관계된 잘못된 성경 번역의 예가 바로 갈라디아서 2 16절에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2:16)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는 잘못된 번역이며, 바른 번역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예수님을 영접하는 믿음"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영접하시는 것은 내 믿음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믿음 만을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할 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게 되며,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구원의 교리로 삼게 하는 성경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많은 성경 구절들 중에 사도행전 16 31절과 로마서 10 13절을 들 수 있습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 16:3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10:13)

 

    위 구절에서 "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또 누구든지 "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나가는 이유는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며 누구나 나름대로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세상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다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 7:21) 그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만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구절, 마태복음 7 22절에 "주여 주여" 하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을 지적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7:22-23)

 

    "그 날"은 하나님의 심판날 2011 5 21일 입니다. "선지자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며, 이들은 다 나름대로 권능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지대한 열성을 갖이고 교세를 2, 3배로 만드는데 공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열심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뜻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음을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19:24)과 비교하셨습니다.

   결국 "내가 믿는 믿음"이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행위"는 나를 구원으로 이끌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처럼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결과 일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근본적으로 내 구원에 대하여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시편 80 17-18절의 말씀이 내가 구원 받는 과정을 잘 설명하십니다.

 

    "주의 우편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의 위에 주의 손을 얹으소서 그러하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케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 80:17-18)

 

    "주의 우편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소생" 시키시므로 내 신앙 생활이 시작됩니다. 말하자면 주님께서 나를 영접하신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영접하기 이전에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소생되었는지 알아보는 일은 우리가 평생을 두고 해야 할 일입니다.( 9:11)

   이 결과는 우리의 믿음이 구원을 얻는데 도움이 될 수 없음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역사(役事:Work)이며 (살전 1:3), 우리의 아무런 역사(Work)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2:8-10) 한국의 모든 교파가 이 믿음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통을 가지고 구원에 이르자는 노력입니다. 이러한 노력에 정신이 팔려 "성경만이 그리고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원칙(진리)을 잊어버리고, 신학논리로 교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4:3-4,  6:9-10,  11:8)

   그러므로 성경이 제시하는 종말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멀게 하신 것입니다. 그 증거의 한 예로,종말에 대한 성경말씀이 제시될 때마다 마가복음 13 32절을 암송하듯 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13:32)

 

   이 구절에서 "아무도"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제외됩니다. 전도서 8 5절이 이점을 강조합니다.

 

    "무릇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시기와 판단('심판'이 바른 번역)을 분변하나니" ( 8:5)

 

    "지혜자"는 구원 받은 사람을 지적하며 노아의 여덟 식구가 지혜자들이며,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피한 놋과 그의 두 딸이 지혜자들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시기"를 분별하도록 직접 계시를 받았습니다. 종말 직전에 살고 있는 지혜자들이 노아의 식구와 놋의 식구와 다른 점이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시기와 심판에 대하여 이미 성경에 기록하셨고, 때가 될 때(20세기 말엽) 까지 인봉해 두셨다가 지혜자들이 날짜의 뜻을 알도록 그 인봉을 여셨습니다( 5:). 

마가복음 13 32절로 돌아가서, "천사들( 1:6, 고후 11:14, 벧후 2:4), 아들도 모르고"라고 하신 뜻에 대하여는 지혜자가 아니고는 알지 못하도록 기독교인들의 마음 문을 닫으셨습니다.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보라 그 날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해 주신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해하면 "아들"은 그리스도가 될 수 없고 "멸망의 아들"(살후 2:3,  14:12)을 지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창조 주이심을( 1:1-3) 우리는 알고있으며,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10:30)고 하셨고,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14:9)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사야서에는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43:11)고 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그가 곧 여호와이심을 가르치며, 또 그 여호와께서 아버지이십니다.

 

마지막 때에 살고있는 기성 교인들의 한결 같은 구호가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만날 준비가 되어있다라는 낙관적인 신앙 고백입니다. 현관문을 가끔 두드리는 여호와의 증인들도 말세가 되었음을 항상 말하면서 그 말세를 준비하려면 여호와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각 교단이 강조하는 구원의 확신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세의 현상을 그리스도께서 미리 아시고 신랑을 맞이할 열(10) 처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 25:1-13). 9절에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했습니다. 이 파는 자들은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말하는 이마에 표( 14:9-11)를 받은 자들이며, 사실상 기름을 사는 줄 알고 있는 사람들(교리를 믿는) 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거듭나는 순간 기름을 그리스도로부터 거저 얻은 것입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순간까지 미련한 기독교인들이 기름이 없든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번역자 들이 그리스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며, 특별히 세상에서 가장 환영을 받고 있는 NIV(New International Version)는 그 번역자들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자신이심을 모르고 있습니다.( 6:10, 10-13,  11:8)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백성들이 예수님의 재림날짜를 알아야 되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를 에스겔 33장을 공부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파수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는 것을 기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악인의 죽는 것"은 말세를 지적하며, 이 심판날이 다가오는 것을 "칼이 땅에 임함" 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구의 칼이겠습니까?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파수꾼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망대(望臺)에서 멀리 바라보고, 적을 발견하면 나팔을 불어야 하며, 나팔을 불지 않으면 그 칼이 파수꾼에게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샘"을 읽은 소감을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다 파수꾼입니다. 그리고 그 파수꾼들이 다 망대에 올라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적이 오는 것을 집안에 앉아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파수꾼의 역할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 역할이 성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연약한 인간에게 주시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사실상 우리는 누구 나가 다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순종을 못하고 있으나 순종하는 마음을 가질 때 지혜를 주실 뿐 아니라 "말씀을 듣는 기회"를 주십니다.( 10:16, 31:33, 32:40)

   이사야 5장은 하나님의 포도원을 황무하게 하시는( 12:10-17) 계획입니다. 교회시대를 마감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던 그 교회가 "사단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18,  9:11).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에서 "도망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50:8, 28, 51:4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 24:15-16)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성경은 말세에 살고있는 자기의 백성들이 읽도록 계획하시고, 구약에 나오는 지명과 인물들이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지적합니다.

   유대에 있는 자들은 교회에 속한 기독교인을 지적하며, 교회시대가 끝나면서 사단이 교회를 다스리도록 권한을 얻었으며, 참 믿는 자들은 그 교회에서 도망해 나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201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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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1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이번 달에는 성경에 기록하신 연대에 대하여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2011 5 21일이 그리스도인이 휴거를 당하는 날이며,그날부터 5개월간 세상의 심판이 시작되며, 마침내 10 21일에는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는 불타고 없어진다는 성경의 기록을 함께 증명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인간의 역사와 그 말로를 상세히 성경에 기록해 두셨지만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근 2000년간 모든 신학(神學)도들이 관심을 가지지 못했고, 사실상 기독교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는가?"하는 질문에 대하여 성경공부에 열중했던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성경기록이 분명하지만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미치지 못해 모든 교단이 우왕좌왕 한 것이 기독교 역사이기도 합니다.

 

   1991년에 우리가, 속해 있던 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깨닫고 새로운 교회를 찾아 헤매던 생각을 합니다. 칼빈의 5대 교리(지금에 와서는 이 교리도 잘못된 것을 발견합니다.), 개혁교리를 믿는 정통장로교회(OPC)를 찾아 이적(移籍)을 했습니다마는, 그러한 교회는 100중에 하나도 찾기가 힘든 때이었고, 교인의 수는 손꼽을 정도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모든 교회가 (정통장로교회를 포함한) 구원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서 교회시대(AD 33년부터 AD 1988년까지)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개혁교리를 믿는 교인들이 구원에 대한 성경말씀을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고, 그래도 성경을 바로 공부해 보겠다는 태도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연대를 공부하는데 있어서도 개혁주의를 믿는 성경 학도들의 태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성경말씀을 성경말씀으로만" 이해해야 된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교회가 교회시대를 통하여 성경을 가르치고 있는 줄 알면서 그렇지 못한 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이 사실을 다니엘 12 9절과 요한계시록 5장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 12:9)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 5:8-9)

 

   위의 구절이 기독교역사를 잘 설명합니다. 유럽을 여행하면 가는 곳곳마다 웅장한 많은 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그 성당에서는 성도들이 무릎을 꿀고 기도하는 모습이 끊임 없이 보입니다. 인류역사에서 책을 출판하는 기업이 기독교 때문에 생기고 또 번창한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한국의 밤거리는 골목마다 십자가의 네온사인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독교가 인간 문화와 문명에 기여한 위대한 업적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말씀이 지적하는 바는 세상에 종말에 이르기까지 성경말씀을 인봉(印封)해 두셨다가, 마지막 큰 환난기간에 와서 그리스도자신이 그 인봉을 때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봉 하신 성경의 내용은 예수님의 재림 날자 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의 계획이며,( 1:4-14, 2:10,  17:5,  9:26) 또 성경 전반에 대한 뜻입니다.

성경에 대하여 인간들이 우매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보면 로마교회의 성당의 차림새와 예배 방법입니다. 이 행사야말로 세 살 난 아이들이 흙으로 떡을 빚어 만들고, 깨진 접시 조각으로 밥그릇도 만들어 놓고, 너는 아버지 나는 엄마, 그리고 복덩이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라고 흥겹게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게 보입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세례를 받도록 명령하셨기 때문에( 1:33), 세례에 관심이 많아진 결과, 성경에 나오는 "세례"라는 단어를 전부 "침례"로 고쳐서 성경을 출판했습니다. 더욱 가증한 것은 그 성경이 한국어 KJV라고 선언하면서 출판했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 또한 소꿉장난을 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보고, 100독을 하였고, 유명지사 들의 설교 집과 주석을 참작했지만, 이 어렵고 어려운 성경말씀을 이해할 기회를 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 큰 환난 날이 시작하면서 일곱 인을 떼실 때까지 인봉 해 두셨기 때문이며, 마침내 예수님께서 친히( 1:18, 3:7) 그 책을 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책(성경)을 여신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의 상식과 신학의 지식으로는 성경의 뜻을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2000년의 기독교역사에서는 성경을 다른 어떤 책을 보듯이 읽고 해석해 보겠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뜻을 각자 마음에 와 닫는 대로 해석하였고,( 29:13) 성경학자 들의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연대를 공부하는데 있어 몇 가지 원칙을 공부해 보겠습니다.

 

첫째: 성경에 기록된 숫자도 다른 숫자가 아닌 단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깊은 뜻이 있으며,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에도 사용하셨습니다.

둘째: 세상의 법적인 문서는 작성된 날짜와 법이 적용되는 날짜가 표시되어야만 그 효력이 있듯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인 성경은 사건의 날짜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셋째: 성경은 창조 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세상의 어떠한 현상이나 일화에다 비교할 수 가 없습니다.

넷째: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남의 마음도 다 모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휴거일, 2011 5 21일의 계산,

 

   우선 창세 후 노아의 홍수까지의 날짜를 계산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 2:2)

 

   세상역사의 시작이며, 만물의 창조, 인간의 창조가 끝나고 제 7일에 안식하신 기록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우리의 안식을( 3:11, 4:1-11) 약속하신 기본이 됩니다.

창조 년은 성경달력의 영( 0 )년이 됩니다.

 

   "아담이 일백 삼십(130)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 5:3)

 

셋은 아담의 직계 아들이며 성경의 달력은 130년이 되었습니다.

창조 후 => 0 +130 = 130, 의 출생

 

   "셋은 일백 오(105)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 5:6)

 

    이 구절에서 에노스가 셋이 105세에 아들로 태어 났습니다.

창조 후 => 130 + 105 = 235, 에노스의 출생

 

    "에노스는 구십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 십 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오(905)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 5:9-11)

 

   게난은 에노스의 직계아들이 아닙니다. 게난은 에노스의 후손이며, 에노스가 죽은 해에 난 에노스의 후손입니다. (이 관계는 누가복음 3 35-36절과 창세기 11 12절의 기록을 비교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아박삿과 살라 사이에 추가하여 사람들의 이름이 삽입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족보에서 유의하게 되는 것은 사라가 아박삿의 직계 아들이 아님을 쉽게 알게 됩니다. 사라는 아박삿의 먼 후손임을 알게 됩니다.

직계 아들과 먼 후손을 구별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연대를 쓰셨습니다.

 

같은 방법으로 창세기 5 11절을 이해하게 됩니다.

창조 후 => 235 + 905 = 1140, 족장 에노스가 죽은 해

 

    "게난은 칠십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 사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십(910)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 5:12-14)

 

    그 다음의 족장시대는 게난이며, 910년이 계속되었습니다.

 창조 후 => 1140+ 910 =  2050 , 족장 게난이 죽은 해

 

   "마할랄렐은 육십 오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 삼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팔백 구십 오(895)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 5:15-17)

 

 게난을 물러 받은 성경역대의 족장은 마할라렐입니다.

창조 후 => 2050 + 895 = 2945 , 족장 마할랄렐이 죽은 해

 

"야렛은 일백 육십 이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육십 이(962)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 5:18-20)

 

야렛의 족장시대가 926년 계속 되었습니다.

창조 후 => 2945 + 962 = 3907, 족장 야렛이 죽은 해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365)세를 향수하였더라"( 5:21-24)

 

에녹의 족장시대가 365년 계속 되었습니다.

창조 후 => 3907 + 365 = 4272, 족장 에녹이 죽은 해

 

그 다음은 인간역사에서 가장 장수한 무드셀라의 족장시대 입니다.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 구(969)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 5:25-27)

 

창조 후 => 4272 + 969 = 5241 , 족장 무드셀라가 죽은 해

 

"라멕은 일백 팔십 이(182)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 5:28-29)

 

창조 후 => 5241 + 182 = 5423 , 노아가  난해

 

   그 다음에는 창세기 제 7장에 연결이 됩니다. 여기서는 연대를 표시하는 양상이 좀 달라집니다. 노아라고 하는 중심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라멕(노아의 부친)의 족장시대는 182년으로 끝이 나고, 노아의 족장시대가 시작됩니다.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세라" ( 7:6)

 

노아와 노아의 여덟 식구가 방주에 들어간 해를 기록하셨습니다.

 

창조 후 => 5423 + 600 = 6023, 노아의 홍수가 이러난 해 입니다.

 

   아주 중요한 날짜 노아의 홍수가 세계 창조 후 6023만에 일어난 연대를 이상과 같이 기록하셨습니다. 홍수가 일어난 해 뿐 아니라 그 날짜를 기록하셨습니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2 17)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 7:11)

 

계속하여 족장시대를 아브라함 시대까지 계산을 우선 할 수 있습니다.

 

셈의 후예는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2)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년(500)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 11:10-11), (2+500=502)

창조 후 => 6023 + 502 = 6525 , 족장 셈이  죽은 해

 

아르박삿은 삼십 오세(35)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 삼(403)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 11:12-13),  (35+403=438)

창조 후 => 6525 + 438 = 6963, 족장 아르박삿이  죽은 해

 

 셀라는 삼십(30)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 삼(403)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 ( 11:14-15), (30+403=433)

창조 후 => 6963 + 433 = 7396, 족장 셀라가  죽은 해

 

      "에벨은 삼십 사(34)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 삼십(43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 11: 16-17), (34+430=464)

창조 후 => 7396 + 464 = 7860, 족장 에벨  죽은 해

 

     "벨렉은 삼십세(30)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 구(209)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 11: 18-19), (30+209=239)

 창조 후 => 7860 + 239 = 8099, 족장 벨렉  죽은 해

 

    "르우는 삼십 이(32)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 칠(207)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 11: 20-21), (32+207=239)

창조 후 => 8099 + 239 = 8338, 족장 르우가  죽은 해

 

"스룩은 삼십(30)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2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 11: 22-23), (30+200=230)

창조 후 => 8338 + 230 = 8568, 족장 스룩이  죽은 해

 

"나홀은 이십 구(29)세에 데라을 낳았고 데라을 낳은 후에 일백 십구(119)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 11: 24-25), (29+119=148)

창조 후 => 8568 + 148 = 8716, 족장 나홀이  죽은 해

 

     "데라는 칠십(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 11: 26-27)

 

 

 나흘은 아브라함의 할아버지이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를 낳음으로써 그 족장 시대가 끝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탄생은 창조 후 8716 + 70 =8786년임을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세상이 알고 있는 태양력으로 계산하면 언제냐 하는 점입니다.

 

다음달에는 나머지 아브라함 이후의 연대를 계산하면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태양력과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